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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18 안락사. 그 슬픈 이야기에 대해 2

마지막 배려

 

 

 

진료 받으러 오셨어요?”

 간호사의 질문에 강아지를 안은 아주머니는 머뭇거렸다. 차트를 보니 열네 살 된 말티즈 재롱이는 진료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생각해보니 머리에 쪽을 진 할머니가 가끔 미용을 맡기러 왔던 기억이 난다. 미용이 끝날 때까지 두 시간 가까이 조용히 기다렸다가 강아지를 데리고 가셨다.

 진료실에 들어온 재롱이는 한 쪽 유선에 커다란 종양이 있고, 치석이 많이 낀 상태라 입 냄새가 심했다. 어떻게 오셨냐는 질문에 아주머니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더 이상 재롱이를 키울 수 없다며 안락사를 원했다.

 안락사. 회복할 수 없는 죽음에 임박한 중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그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켜 사망케 하는 것. 사전적 의미에서는 숭고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과정이 동물에게는 편하게 버리려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많아서, 치료비가 많이 들어서, 대소변을 못 가려서, 그 이유는 다양하다. 생명이라면 늙고 병드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애완동물은 그 당연한 이치 때문에 죽어간다.

 수의사로 일하면서 사전적 의미에 해당하는 안락사를 한 경우는 딱 한 번이었다. 노부부가 푸들을 데리고 내원했는데 열다섯 살이 넘은 푸들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었고 사지를 쓸 수 없었다. 뇌 손상이었다. 이 년 넘게 병수발을 하던 부부는 강아지가 더 이상 먹을 수도 없게 되자 안락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안락사 전 강아지와 마지막 인사를 하던 부부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안락사를 원하는 다른 보호자들에게 하듯이 키우던 정을 생각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하기에는 재롱이와 아주머니 사이에는 정이라 할 만한 추억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안락사에 대한 아주머니의 결심은 확고해보였다. 사체도 병원에서 처리해주길 바랐다. 아주머니는 안락사비용과 사체처리 비용을 지불하고 재롱이를 한 번 쳐다본 후 병원을 떠났다.

 모든 일은 닥쳤을 때 바로 해야 하는데 재롱이의 눈을 본 순간, 물기 어린 그 초롱초롱한 눈을 보자니 주사바늘을 꽂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재롱이는 병원 입원실에서 견생을 더 연명했다.

 다음날 아침 만난 재롱이는 나에게 어떤 인사도 없이 밥그릇에 있는 사료만 먹었다. 그 다음날도 녀석은 사료만 먹었다. 내가 내릴 결정을 이미 알고 있는 듯 녀석은 조금의 정도 주지 않았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애정 어린 손길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처럼 덤덤했다. 갇혀 있는 게 안쓰러워 풀어 놓으면 같은 동선으로 왔다갔다만 했다. 사료는 주는 대로 먹어치워 녀석의 밥그릇은 항상 비었다.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해서 입원장 바닥은 녀석의 똥으로 칠해졌다. 재롱이의 행동은 치매 노인 같았다. 입원견을 관리하는 간호사의 푸념이 점점 커져갔다.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된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보호자들은 개들의 수명을 묻지 않는다. 그 강아지가 열네 살의 재롱이처럼 노령견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 귀여운 강아지는 노령견의 기준인 여덟 살이 넘으면서 늙고 병들어 간다. 충동적으로 강아지의 귀여움에 반해서 분양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강아지의 노후에 대한 책임감은 어디에도 없다. 그 강아지가 자신보다 먼저 늙어갈 것이고 질병으로 아파할 때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생명을 쉽게 살 수 없을 것이다.

 개들은 열두 살에서 열세 살에 질병으로 가장 많이 세상을 떠난다. 보호자들이 개의 수명을 묻는 시기이다. 치료를 하면 얼마나 살 수 있는지 묻고는 몇 달 정도 살 수 있다고 하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수리를 해서 다시 쓸 수 있는 공산품과 비교해서 치료비가 많이 들면 버리고 새 강아지로 사는 게 경제적이라는 잣대를 대는 사람들도 있다. 같이 지내온 세월에 대한 추억이 너무 쉽게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다. 십여 년 전에 강아지의 모습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 그들의 평생을 보내기에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인데 그들의 마지막에 대해 너무 무책임한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반려동물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이 그 사람들에게만 있다는 슬픈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열두 살이 넘은 개의 일 년은 사람의 오년과 같다. 몇 달의 시간이 그들에게는 일 년이 될 수도 있다. 몇 달의 시간이라도 나의 곁에서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면 그들로서는 행복한 생을 마치는 것이다. 물론 십 년 넘게 같이 지내온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재롱이처럼 보호자가 먼저 떠난 뒤에 홀로 남겨져서 인위적인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내가 책임져 주는 것이 내 가족이었던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인지도 모른다.

 재롱이는 일주일간의 입원실 생활을 마치고 할머니 곁으로 갔다. 그 날 자신의 운명을 알았는지 잡히지 않게 계속 피해 다녔다. 재롱이가 유일하게 병원에서 소통했던 밥그릇만 남겨둔 채.

 

 

<동물병원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일에 대한 감정을 글로 남겨보았습니다. 반려동물을 데려오기 전 평생을 함께 하는 가족이라는 생각.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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